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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렌스 존스턴의 히드코트 매너 가든 [Lawrence Johnston] - 영국 정원의 숨겨진 보석

한아름 (40대공주~~) 2019. 1. 5. 11:31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와 함께 하는 정원 이야기


로렌스 존스턴의 히드코트 매너 가든


영국 정원의 숨겨진 보석

[Lawrence Johnston ]

출생 - 사망


1871.10.12. ~ 1958.4.27.


로렌스 존스턴이 40년에 걸쳐 완성한 히드코트 매너 정원. 1948년 존스턴은 집과 정원 전체를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기구인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했고, 이로써 1949년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정원이 소개됐다. 소개된 직후 히드코트 매너는 ‘20세기 최고의 정원’이라는 찬사와 함께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영국인’으로 살았던 가든 디자이너

로렌스 존스턴(Lawrence Johnston, 1871~1958)을 이해하려면 우선 그의 배경부터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존스턴은 1871년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며 출생지는 파리였다. 어린 시절을 잠시 파리에서 보낸 그는 청소년기에 영국으로 주거지를 옮긴 뒤, 생애 마지막 10년을 제외하고는 영국인으로 살았다. 미국 국적을 지녔던 존스턴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할 무렵 아예 국적을 영국으로 바꾸었고, 제 1차 세계대전 때는 군인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 중 부상을 당해 짧은 군인 생활을 마친 뒤, 집안의 가업을 이으며 20세기 최고의 정원이라고 일컬어지는 히드코트 매너 정원(Hidcote Manor Garden)을 디자인하며 살았다.

로렌스 존스턴은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음악, 미술,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활동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특히 여행을 좋아했던 그는 세계 여러 나라, 그 중에서도 당시로서는 남들이 잘 가지 않았던 알프스, 히말라야,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산들을 탐험하곤 했다. 그가 이런 탐험을 즐겼던 이유는 식물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는 산속에서 만나는 희귀종 식물들을 조심스럽게 채집해 가져온 뒤, 자신의 정원 히드코트매너에 심는 것을 즐겼다.


‘원조’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 전설적 히드코트 매너 정원의 탄생

히드코트 매너 정원은 정원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유명하다. 다람쥐 모양으로 깎인 토피어리 기둥은 정원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멀리 보이는 곳에 또 출구이면서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보인다.


로렌스 존스턴의 히드코트 매너 정원은 지금도 가든 디자이너, 식물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설의 장소’로 유명하다. 어떤 분야든 ‘원조’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영국에는 히드코트 매너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정원이 많다. 그러나 1948년 로렌스 존스턴이 자신이 40년 간 가꾸고 디자인한 정원을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하고, 다음 해인 1949년 처음으로 대중에게 히드코트 매너 정원이 공개됐을 때 전 세계는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해본 적 없는 엄청난 정원 예술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이야기지만, 그 이후 로렌스 존스턴의 히드코트 매너 정원을 흉내내고, 그 콘셉트를 빌려가는 일은 한동안 유행처럼 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히드코트 매너가 가지는 ‘원조’로서의 가치는 변하지 않으며, 지금도 많은 가든 디자이너들이 로렌스 존스턴의 히드코트 매너에서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로렌스 존스턴이 내셔널트러스트에 정원을 기증한 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 첼시 플라워쇼에서 선보여지기도 했다.


40년 간 정원을 디자인하다

로렌스 존스턴은 1907년 그의 어머니가 영국 코츠월드(Cotswolds)라는 지역에 히드코트 매너라는 주거지를 구입한 것을 계기로, 그곳에 살면서 본격적인 정원 디자인을 시작했다. 지금 이곳은 나무와 꽃, 풀들이 더 이상 잘 자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윤택함을 자랑하지만, 구입 당시 히드코트 매너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곳은 주변이 너무 휑하게 뚫려 있어서 1년 내내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지역으로, 정원을 가꾸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때문에 존스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치 만리장성을 쌓듯이, 정원 전체를 둘러싸는 생울타리를 만들어 바람으로부터 정원을 막아주는 것이었다. 이때 그가 사용한 울타리목은 참나무Quercus 호랑각시나무Ilex, 서어나무carpinus, 너도 밤나무Beech, 주목나무Yew 등으로 낙엽과 상록수를 골고루 썼으며, 그 길이가 무려 7. 2킬로미터에 달했다.


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 초화류는 바람을 막아주는 장치가 없이는 풍성한 꽃을 피우지 못한다. 사진의 뒷부분을 보자. 울창한 소나무들이 방풍림으로 들어서 있고, 그 앞으로 다시 높이 3미터 이상의 생울타리가 벽처럼 둘러서 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만들었다는 생울타리의 엄청난 길이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 생울타리를 만드는 데만 수 년의 시간을 보냈고, 더불어 생울타리의 키가 다 자라 정원의 바람을 막아주는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 확인한 뒤에야 그곳을 채울 식물 디자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정원이 가진 단점과 장점을 수년 동안 꾸준히 체크하고 연구한 뒤에야 본격적인 디자인을 시작했던 셈인데, 이 점은 모든 것을 빨리, 신속하게 끝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우리의 진행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하게 하는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로렌스 존스턴의 가든 디자인 노하우

존스턴은 가든 디자인에 앞서 무엇보다 식물을 무척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희귀한 식물을 자신의 정원에 가져오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한 산악 여행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을 정도로 식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강했다. 이 점은 로렌스 존스턴의 히드코트 매너 정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그의 정원 안에는 다른 곳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꽃과 풀들이 가득했다.

더불어 존스턴은 문학과 예술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런 그의 문화, 예술적 취향은 정원을 디자인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꿈꾸는 정원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서양 정원의 모태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정원, 프랑스 정원에 대해 공부하고 거기에 식물에 대한 사랑을 더해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가든 그만의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1. 남북으로 축을 만들어 시선을 집중시키고 깊이를 창출하다


히드코트 매너 정원의 안내도. 한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남북의 축을 만들어 시선을 집중시키고 깊이감의 효과를 가져왔다.


위의 안내서에 등장하는 히드코트 매너의 평면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곳 정원은 건물을 동쪽(오른쪽)에 두고 남과 북으로 뚜렷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축의 구성은 존스턴이 오랜 시간 동안 땅의 형태를 연구한 뒤 그려낸 것이다. 땅의 모양이 똑바르지 않고 한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단점을 남북으로 뻗은 축을 이용함으로써 보완, 정원 전체를 엄청나게 길고 깊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온 것을 알 수 있다.


남북으로 이어진 긴 동선의 축이 정자의 문을 통해 그대로 보인다. 이 축은 이 땅이 지닌 단점일 수 있는 부분을 오히려 극대화시킨 디자인으로, 정원을 좀 더 깊고, 길게, 그리고 볼륨감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2. 각각의 방이 정원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정원을 쪼개어 ‘방’의 개념으로 구성하는 방식은 이미 비타 색크빌 웨스트의 시싱허스트 정원에서 소개한 적 있다. 이때도 언급했지만, 비타가 이런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로렌스 존스턴의 선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원에 입구와 출구를 만들어 방의 개념으로 그 안을 다른 주제와 형태로 꾸미기 시작한 건 바로 존스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게다가 존스턴은 단순히 덩그러니 방을 여러 개 개별적으로 디자인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을 통과하면 다시 다른 방이 나타나는 식의 ‘연속성’을 만들었다. 이런 연속성과 각각의 방에 들어섰을 때의 전혀 다른 풍경은, 정원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 ‘비밀스러움’과 ‘놀라움’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낸다.


정원에 만들어진 각각의 방은 출입구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또한 각 방마다 다른 주제로 구성이 되어 보는 이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존스턴의 각 방들은 그 주제가 중복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식물의 색감을 주제로 한 화려한 방이 있는가 하면, 마치 단순한 가구 몇 개를 배치한 것과 같은 모던한 방, 연못이 주제가 되는 방 등 예측이 불가능한 여러 개의 방들이 정원을 더욱 신비롭고도 재미있게 만든다.



3.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정원에서 배우다


존스턴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정원으로부터도 많은 노하우를 가져왔다. 사진에서 보이는 정형적인 기하학적 패턴을 이용한 화려한 정원은 고대 그리스 로마로부터 이어진 서양 정원의 모태로, 히드코트 매너 정원은 시간을 뛰어넘는 다양한 정원 문화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존스턴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여행을 많이 했다. 그는 여행을 통해 단순히 여행자의 즐거움만을 느꼈던 것이 아니라 서양 정원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 프랑스의 바로크 정원에서 많은 디자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히드코트 매너 정원은 당시 영국에 불고 있던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의 영향을 받아 얼핏 매우 영국적인 정원이 아닌가 싶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강한 남북의 축을 형성한 부분은 프랑스 바로크 정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집 가까운 곳은 좀 더 포멀한 디자인(Formal design)으로 직선과 기하학적 느낌을 많이 살렸지만, 집에서 멀어질수록 자연 풍광을 그대로 살린 듯한 디자인을 구사했던 것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정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즉 그의 디자인은 단순히 영국스럽지도, 그렇다고 시골적 낭만으로만 가득한 것도 아닌, 문화적인 절충이 아름답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산으로부터 익힌 자연의 디자인


너무나 자연스러운 탓에 자칫 손을 대지 않은 숲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가축을 기르던,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었던 곳이었다. 여기에 존스턴은 다양한 나무와 초화류를 심어 스스로 자란 듯 자연스러움으로 가득한 정원을 만들었다.


존스턴의 가든 디자인의 많은 요소는 자연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많은 산들을 탐험 혹은 등반하며 그곳에 살고 있는 식물들의 구성과 형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런 관찰을 통해 익힌 그의 감각은 히드코트 내 ‘윌더네스(Wildernes)’라는 숲의 조성이나 혹은 개울을 이용해 만든 ‘스트림 정원(Stream garden)’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최대한 원래 그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식물을 심어두었고, 가능한 사람 손에 의해 식물의 형태가 변형되지 않도록 구성을 했다. 때문에 얼핏 아무 생각 없이 정원을 지나가다보면 그곳이 존스턴에 의해 디자인된 정원이라기 보다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수국이 자라고, 앵초가 피어난 것처럼 보여 오히려 관심을 덜 받게 된다. 그러나 존스턴의 어머니, 윈쓰롭 여사(Mrs. Whinthrop)가 경매를 통해 농장이었던 히드코트 매너를 처음 구입했을 당시 이곳이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들었던 척박한 땅으로, 가축을 기르던 장소였음을 떠올려보면 존스턴이 무엇을 했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 곳곳에서 엿보이는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의 영향


아트 앤드 크래프트의 느낌을 전달해주고 있는 정원 속 디자인들. 불규칙적인 돌을 이용해 만든 오솔길의 포장, 기성품이 아닌 장인이 직접 공들여 만든 대문과 벤치, 정자의 유리창 역시도 기성품이 아니라 장인이 직접 만든 수공의 작품이다. 이러한 곳곳의 디테일들이 히드코트 매너 정원을 고급스럽게 만들고 있다.


존스턴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배우고 익힌 정원 디자인의 노하우를 히드코트 매너에 적용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역시 영국이라는 터전을 잊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 영국에서 일고 있던 장인의 꼼꼼한 손길에 의해 탄생하는 생활 예술의 경향인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었고, 이를 정원 속에도 적용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섬세하게 공들인 대문과 문의 쇠 장식물들, 독특한 문양의 핸드 메이드 벤치와 직접 구은 벽돌로 구현된 화단, 걷는 길에 깔린 블록의 패턴 등.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의 영향을 받은 정원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셈세하면서도 공들인 구성이 히드코트 매너의 가치를 조금 더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 시킨다.



6. 대비의 효과를 통해 정원을 강렬하게!


꽃으로 디자인한 화려하고 부드러운 화단 정원과 달리, ‘기둥 정원’은 나무를 마치 신전의 회랑처럼 줄 세워 심음으로써 건축물 없이도 식물을 이용해 웅장한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둥으로 사용된 나무는 주목나무다.


존스턴의 히드코트 매너 가든 디자인의 진수는 바로 강렬한 대비에 있다. 로렌스 존스턴은 건축적 요소와 함께 식물이 지니고 있는 대비 효과 즉, 딱딱함과 부드러움만을 강조했던 것이 아니라 식물 자체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웅장함과 부드러움이 강한 대비를 이루며 정원을 보다 풍성하고 재미있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특히 그가 구성한 2개의 기둥 정원(The stilt garden, The pillar garden)이나 극장 정원(The theatre lawn)은 식물 자체만으로도 마치 신전을 지은 듯한 웅장함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는 식물을 비슷한 색감별로 모아 조성한 붉은 화단(The Long walk)에서 보여주는, 식물의 부드러움이 극대화된 것과 극렬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대비의 효과는 정원을 좀 더 강렬하고 재미있고 놀라움으로 가득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숨겨진 보석, 로렌스 존스턴과 히드코트 매너 정원

7월에서 8월 사이 절정을 맞는 붉은 색감의 꽃이 피어나는 ‘붉은 화단’. 색감을 통해 화려함을 뿜어내는 정원은 비록 한달 남짓의 관경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정원보다 화려하고 아름답다.


로렌스 존스턴이 지니고 있었던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가 수집한 식물의 리스트, 그리고 히드코트 매너를 만들 때의 도면과 기록 등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점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존스턴의 성격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는 조용한 성품으로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당시 정원 문화를 선도하고 있던 영국의 왕립원예학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 RHS)와도 아무런 연관을 맺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정원은 꽁꽁 숨겨진 채 누구에게도 공개가 되지 않았던 셈이다.


훗날 존스턴은 히드코트 매너 전체를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한 채, 건강상의 이유로 니스 근처의 남프랑스 망통(Menton)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곳에 제2의 정원, 세르 드 라 마돈(Serre de la Madone)을 가꾸었다. 존스턴은 이곳에서 10년을 보낸 뒤 세상을 떠났고, 죽은 후에는 히드코트 매너 정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어머니 무덤 옆에 나란히 묻혔다.

존스턴의 어머니는 두 번 결혼했지만 두 번 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미망인이 되었다. 로렌스 존스턴은 그의 어머니가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유일하게 생존한 자식이기도 했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나 혼자라는 외로움이 늘 가득했다. 이런 그가 40년 동안 정원을 가꾸는 일에 매진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에게 정원은 위로와 따뜻함이 가득한 곳이었고, 그 느낌은 그가 떠난 후에도 히드코트 매너 정원에 그대로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로렌스 존스턴의 히드코트 매너 가든 [Lawrence Johnston] - 영국 정원의 숨겨진 보석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와 함께 하는 정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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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규방칠우
글쓴이 : 혜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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