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그 책을 통하여 최순우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 책을 만날 무렵 우리나라는 전 국민 책읽기운동이라도 열린듯 동네마다 두세곳의 도서대여점이 생기고 있었다. 아마도 25년전쯤으로 기억된다. 그 무렵 나도 덩달아 조금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박완서와 이문열 박경리 그리고 신경숙 신간을 읽었다. 개그맨 전유성의 '나를 웃긴 100인의 사람'을 마지막으로 대여점에서 빌릴 책이 없을 무렵 우리 마을의 시장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동사무소 이층에 마을도서관이 있는 것을 알았고 마침내 그곳에서 만난 책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였다. 살아오며 읽고 또 읽는 대여섯권의 책을 만났는데 그중의 한권이기도 하다. 그 책을 읽기전 나는 우리나라의 도자기나 옛 건축물 그리고 서화에 대해 그리 깊은 애정을 느끼지 못했었다. 서양의 예술과 비교할때 조금 부족하다 여기고 있었슴을 고백한다. 그런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천천히 읽고 거듭 읽으며 책에 실린 우리 것들을 보고 또 보며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었다. 일부러 가까운 박물관을 찾는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다. 우리것의 아름다움을 전하시려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셨으면 우매무지한 젊은 아낙에게까지 그 소중함을 전하실수 있으셨나 짐작케 된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최순우옛집에서 집필되었다. 세상 일이 그렇듯 차츰 그 소중함도 잊고 지낼무렵 7,8년전인지 T V에서 그분의 옛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분 삶의 마지막 시간(1976~1984)을 사시던 집이라고 했다. 돌아가신후 따님이 사시던 그 집이 재개발문제로 헐릴 위기에 있을때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설립되면서 이 재단법인의 출연으로 이름도 '최순우옛집'으로 개방된다는 소식이었다. 정말 그 소식을 접하며 무척이나 반가왔다. 언제나 들를수 있을까 기둘리며 생각하고 지냈는데 결혼후 처음으로 명절을 한가하게 지낼수있는 시간을 맞아 이번 추석날 가족들과 함께 아침미사를 드리고는 서울도심이 이토록 막힘없는 날이 언제였던가 감동하며 그길로 최순우옛집을 찾게 되었다. 성북구 성북로 15번길 9. 뒷길에서 찾느라 좁아도 엄청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며 마치 어릴적 살던 우리 옛집 찾아 가는 길처럼 가슴이 설레고 두근대었다.
하얀 돌계단을 오르고 대문안으로 들어서기전 가만히 숨결을 다스려 보았다. 한발짝 들어서니 옛집에서 벌써 고요하고 정갈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마도 우물이 있었겠다 싶은 곳에 가을 들꽃들이 피어있다. 마침 9월중순 오픈되는 김**님(?)의 소장 고가구전이 준비되어있어 유리창으로 보여되는 방안의 소품들은 귀한 성정을 지니셨던 그분의 안목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충분하다. 함지박이 기대어 있는 사랑방 위에는 杜門卽時沈山이 현판으로 걸려있다. 그분께서 이집에 이사하신후 직접 쓰셨다고 한다. 문을 걸어 잠그니 이곳이 산중 깊은 곳..이라고 했다. 따님이 쓰시던 건넌방에는 추사의 글씨로 梅心舍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매화마음을 가진 방이라 하니 대숲의 바람소리만큼이나 깊은 청정함에 가슴이 시려온다. 댓돌위에 앉아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시간이었다. 앞뜰에는 쑥부쟁이와 공작국화?인지 가녀리게 피어있고 뒷뜰에는 옥잠화와 이름모를 가을꽃들이 피어있다. 그분께서 아침저녁 집안을 돌아보시며 쓰다듬으셨을 애장품들은 그때도 돌비석이었고 여전히 돌비석으로 그분을 기리며 서있다. 뜨락의 밤나무에 밤송이는 이제나저제나 벌어져야 할까 밤잠 설치며 때를 기다릴듯 싶은 초가을의 추석날 정오. 우산을 접어도 펼쳐도 좋을만큼의 소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말없이 옛집을 돌아보는 내 뒤를 그림자처럼 걷던 남편은 아이들에게 조용히 말한다. 엄마 옛날집이 이렇게 생겼었지..라고. 옛것.. 지금것.. 나중것.. 꼭 어느 시절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겠다. 지금 마주하는 시간에 소중한 눈빛과 마음으로 만날수 있슴에 그져 감사감사일 뿐이다. 최순우옛집에서 품고 온 향기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머물것을 기대한다. 윤송 ♣ 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 |
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글쓴이 : 윤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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