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옛다리를 찾아서 ~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
삼청교(三淸橋), 우화각(羽化閣)


송광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다리,삼청교(三淸橋)와
그 위에 지은 건물, 우화각(羽化閣)이다.
삼청교(三淸橋)는
일명 ‘능허교(凌虛橋)’라고도 한다.
19개의 네모난 돌로 무지개 모양을 만든 후,
양 옆에 다듬은 돌을 쌓아 올려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였다.
무지개 모양의 중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돌이 나와 있다.
조선 숙종 33년(1707) 다리를 만들었고,
그 뒤 60여년이 지난
영조 50년(1774)에 보수를 거쳤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에서 소유하고 있다.
능허교(凌虛橋)라고도 하는 삼청교(三淸橋)는
홍교(虹橋)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우화각(羽化閣) 아래에서 다리역할을 하고,
상부의 우화각(羽化閣)은 건물이면서 송광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역할을 하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삼청교(三淸橋)는 사각의 장대석
19개를 각지게 맞추어 짜 올려
홍예형을 이루었으며,
양 측면도 역시 다듬은
사각의 장대석을 쌓아 올려
하중을 지탱할 수 있게 하였다.
홍예 천장에는 여의보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가 돌출해 있다.
이곳에는 예부터 송광사를 찾았던
시인(詩人)과 묵객(默客)들의 시(詩)가 걸려 있어
이름다운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 홍교는 선암사 승선교나
흥국사 홍교와 같은 웅장한 멋은 없으나,
건물과 함께 이중효과를
보인다는 점에서 드문 예이다.
1774년(영조 50)에 쓴
《능허교((凌虛橋)중창기》에 따르면,
원래 판목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1707년(숙종 33)에 오늘날의
홍교를 조성한 후 60여 년 후에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삼청교 위에 지어놓은 우화각은
사람들의 통행을 돕고자 만든 것이다.
들어가는 입구는 옆면에서 볼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와 비슷한
팔작지붕을 올렸고,
나가는 쪽의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올렸다.
이처럼 서로 다른 모양의
지붕을 하고 있는 것은
나가는 쪽의 지붕이 옆 건물과
가까이 닿아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본다.
비록 웅장한 모습은 아니나,
두 유물이 다리역할도 하면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도 하는
2중효과를 보이고 있다.


















우화각의 구조를 살펴보면,
기단은 바로 홍교의 상층 부분의
장대석으로 결구된 평면을 이용하였고,
양편에 긴 장대석 4개를 연결시켜
낮은 난간으로 삼았다.
주춧돌은 약간 높은
원형의 주춧돌을 놓았고,
기둥은 두리기둥[圓柱]인데
전면은 추녀 밑에 활주를 세웠다.
포작은 주심포이고
주첨차는 교두형이며
행공첨차는 초각(草刻)하였다.
지붕은, 입구 쪽은 팔작지붕이고
출구 쪽은 맞배지붕으로 처리하였다.
이는 아마도 이 건물과
바로 앞에 있는 천왕문 사이의 공간이
좁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 0 1 5. 2. 1 3. 하 얀 머 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