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교(筏橋) 홍교(虹橋)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1729)에 순천 선암사(仙巖寺) 승려인 초안(楚安)과 습성(習性) 두 선사(仙師)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선암사(仙巖寺)에는 숙종 때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승선교(昇仙橋)가 있으니, 벌교(筏橋) 홍교(虹橋) 를 만드는 데 선암사(仙巖寺) 홍교가 참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암사(仙巖寺)에는 숙종 때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승선교(昇仙橋)가 있으니, 벌교(筏橋) 홍교(虹橋) 를 만드는 데 선암사(仙巖寺) 홍교(虹橋)가 참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리를 놓아 모든 사람이 편안히 다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越川功德)은 불교에서 중요하게 꼽는 보시 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예전 승려들 가운데는 다리 축조 기술자가 많았는데, 절뿐 아니라 민간 지역의 다리 가운데도 승려가 놓았다는 것이 여러 개 남아 있다. 



길이 약 27m, 홍예(虹霓) 높이 약 3m. 3칸의 홍예(虹霓)를 연결, 축조한 석교(石橋)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이 홍교(虹橋)는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선암사 승선교(仙巖寺 昇仙橋:보물 400)와 함께 그 구조 형식이 가장 뚜렷하다. 홍교(虹橋)는 다리 밑이 무지개처럼 반원형(半圓刑)으로 쌓은 다리를 말하는데, 홍예교(虹霓橋)·아치교·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다. 

"벌교"라는 지명은 예전에 이곳에 있었던 뗏목다리에서 유래하였다. 이 홍교는 원래 조선시대인 1718년(숙종 44)에 당시 낙안현(樂安縣)의 주민들이 현지에 강과 해류가 교차하는 곳에 원목을 엮어 만든 뗏목다리를 놓았는데, 1728년(영조 4)에 전라남도 지방의 대홍수로 이 다리가 무너져서 1729년 선암사의 초안선사(楚安禪師)가 석교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1734년에 완공되었으며, 그뒤 1737년에 다리를 다시 고치면서 3칸의 무지개 다리가 만들어졌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보수공사를 하면서, 홍예의 밑부분과 석교 외벽의 시멘트를 제거하고 모두 화강암으로 교체하여 원형을 되찾았다. 원래 다리의 규모는 폭 4m, 길이 80m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다리이다. 








무지개 모양을 한 다리밑의 천장 한가운데마다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돌출되어 아래를 향하도록 표현하였다. 다리 밑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썰물 때에는 다리 밑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다리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 

여기에서 보면 옛날 다리와 현재에 만들어진 다리 부분이 연결되여있음을 보여준다. 오른쪽 하얀부분이 현재의 부분이며 왼쪽의 검게보이는 부분이 옛부분이다. 그리고 옛부분중 반원형의 돌 석재는 예전의 돌이며 원형을 제외한 부분의 석재는 다리보수때 채워놓은것이다. 
벌교(筏橋)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홍교(虹橋)가 놓이기 전에 이곳에는 주민들이 뗏목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는데 걸핏하면 다리가 떠내려가서 불편이 많았다고 한다. 홍교(虹橋)는 만들어진지 8년 만인 영조 13년(1737)에 중수되었고 헌종 10년(1844)에 크게 개수되었으며 1984년에 마지막으로 중수 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른다. 

다리를 중수할 때마다 세운 기념비들이 읍내 쪽 다리 끝에 줄 서 있다. 









2 0 1 5. 2. 9. 하 얀 머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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