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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 번, 처용과 김수영 시인

한아름 (40대공주~~) 2019. 11. 7. 11:04

미워도 다시 한 번, 처용과 김수영 시인

꿀잠이 필요한 악필 2015.12.30 17:15

<처용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씩 들어 보았을 겁니다. 신라 헌강왕이 동해에 살고 있는 용을 위해 절을 지어주자, 동해 용이 감사의 표시로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으며, 이 중 한 명이 헌강왕을 따라왔는데 그가 바로 처용이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도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김수영 시인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대표작으로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이 있습니다. 처용과 김수영 시인. 이번에는 이 두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처용가를 현대어로 쉽게 풀어쓴 것입니다. 처용이 처용가를 부르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온 처용은 방문을 열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누워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마 대부분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처용은 화를 내지 않고 <처용가> 위의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사실 처용의 아내와 함께 있었던 남자는 역병을 일으키는 역신이었는데, 처용의 이러한 행동, 처용의 넓은 인품에 감명을 받고, 처용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처용이 있는 곳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해 보도록 해요. 처용이 밤에 들어갔을 때, 처용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습니다. 다른 남자를 집에 들이는게 쉬울까요? 그것도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저녁시간에?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마 처용이 매일 밤,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왔고, 아내는 걱정 없이 늦은 시간에 남자를 집에 들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째든 매일 밤 처용의 늦은 귀가로 아내는 외로웠고, 그런 때에 다른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을 지도 모릅니다.

처용이 매일 밤 늦게까지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처용이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바로 이혼을 했지, 저렇게 처용가와 같은 노래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용설화에서는 역신이 처용에게 용서를 비는 것을 끝을 맺습니다. 설화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나, 그들의 인생은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역신이었는지, 진짜 인간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내를 범한 남자가 떠난 이후에도 처용과 아내는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이 다시 함께 살았는지, 아니면 이혼했는지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습니다.

김수영 시인에게 가장 큰 시련은 무엇이었을까요? 김수영 시인은 한국 전쟁 중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김수영 시인은 목숨 걸고 그곳을 탈출 합니다. 이후에 가게 된 곳은 포로수용소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는 이념 대립이 가장 첨예한 곳이었습니다. 자유진영의 병사들 사이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리면, 다음날 화장실에서 시체로 떠오르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었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그런 곳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풀려나서 가장 먼저 아내 김현경을 찾아 갑니다. 김수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내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아내는 김수영과 가장 친했던 선배와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그런 아내에게 집에 가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먼저 가세요.’라고 하며 따라가지 않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말없이 서울로 돌아갑니다. 김수영 시인이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인 그의 아내가 그를 거부한 것입니다. 김수영 시인은 처용처럼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체념한 것처럼 떠납니다. 말없이 나온 김수영은, 아내를 잊지 못합니다. 김수영은 너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까지 기다리겠다는 시를 남깁니다.


처용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처용의 직업이 무당이었든, 의사였든,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든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역병 창궐을 방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것 같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역병을 막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그려 대문에 붙여 놓았다는 점에서 이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처용가>의 내용대로 다른 사내에게 아내를 빼앗긴 것을 역신을 막는 능력이라고 생각해, 처용의 얼굴을 그려 문에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용이 사회적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행복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처용은 김수영 시인처럼 다시 아내와 함께 살았는지도 모르고, 이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김수영 시인처럼 처용 역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것입니다.여기까지는 김수영 시인과 처용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처용과 다르게 김수영 시인에게는 이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 년 뒤 김현경은 김수영에게 돌아옵니다. 김수영 시인이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재결합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예전과 같지는 않았을 겁니다. 김수영은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김수영은 술만 먹으면 아내를 폭행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처용이었다면, 여러분이 김수영이었다면 말입니다. 아마 다시 함께 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함께하면 안 되는 이유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치유할 수 없는 상처 입었고, 과거의 일 때문에 계속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에는 둘 다 불행해 질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처용과 김수영 시인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처용은 단지 처용가를 읊었을 뿐입니다. 김수영 시인은 그 상황이 닥쳤을 때 집에 가자고 말을 하고, 다시 함께 사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처용과 김수영 시인은 우리의 생각처럼 결국에는 불행해졌을까요? 아니면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1968년 김수영 시인은 술을 마시고 집으로 귀가하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됩니다. 김수영 시인이 떠나고 약 반세기가 지난 2013, 김현경은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산문집을 냈습니다. 그리고 책에 김수영을 위한 편지를 하나 남겼습니다. 그곳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

김수영 시인이 계속 불행했을 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글 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