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 김수영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없는 말을 주고 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서
나의 위대의 소재를 생각하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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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인연은
중년의 내 삶에
신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선물이다.
93세의 고령에도 그녀는
내가 갈 때마다
손수 음식을 해주신다.
이번에는 김현경표 콩국수를 해주셨는데
검은 콩을 삶아 곱게 갈고, 걸쭉한 국물이
가득한 모밀 콩국수를 해주셨다.
언제나 간단한 음식도
데코레이션이 중요한 여사님.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음식도 예술 작품이 된다.
자주 뵙지 못해도
많은 연령차가 나는 데도
그녀와 함께 얘기를 나누다보면
글로벌한 친구랑 얘기하는 것 같다.
몇 해 전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에세이를 발간하고
출판사의 생각을 반영한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시면서
<김수영의 여편네>로 바꾸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신다.
시인은 주로 '여편네'라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1968년 시인은 술에 취해 귀가하던 중
인도로 달려든 버스에 치여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 50년 넘게 혼자서
시인의 아내로서
그의 유품들과 함께 숨쉬는 공간에서
단아한 모습으로 살고 계신다.
가끔 강의도 가시고
문인들과의 만남도 하시는데
기억력이 좋으셔서
6.25때 있었던 일을
아주 소상히 말씀해 주시기도 한다.
작년에는 며느리와 두 손녀가 있는
미국에 혼자 다녀오셨다.
우리 아버지는 84세에 이스라엘과 이태리
성지순례를 다녀오셨는데도 주변에서 대단하다고들 말씀하셨는데..
여사님은 92세에 장시간 비행기 타고
콜롬부스처럼 신대륙을 다녀오신거다.
언제나 어울리는 세련된 의상과
모자, 구두까지 완벽한 외출을 하시는데
시인이 돈을 벌지 못할 때
수입 원단을 이용해 부잣집 마나님들의
의상을 만드셨던 그 감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대 영문과에서 공부하실 때
김수영 시인에게 모르는 것을 배우다가
알게된 것이 인연이 되어..
시인의 아내로 가난한 생활을 하시면서
양계장을 해서 돈을 벌고
시인은 시만 쓸 수 있게 내조하신 분.
시인이 술마시고 들어와 주무실 때
물 달라고 외치면 거절않고
매번 가져다 주신 여사님.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지금도 모든 걸 손수 하시고
음식도 버리지 않는 알뜰 주부시다.
그런데 올해 3월 넘어지셔서
병원에 입윈을 하셨고
지금은 집에서 조심스럽게 다니신다.
민초들의 삶을 노래한
<풀>의 시인 옆에는
단아하면서도 지혜로웠던
아름다운 그녀가 있었다.
그녀의 집은 전시장이다.
현관, 부엌, 서재, 베란다 등에 있는
그림과 조각, 그릇 등
하나하나 사연이 넘쳐난다.
이건 누구의 작품이고
이건 어디서 샀고
이건 몇 장 안되는 복사품이고
이건 시인의 육필 원고라고 설명해주신다.
그 많은 전시품들을 한번
세어보고 싶을 정도로 많다.
좀 빠진게 있지만 혼자보기
아까운 것들을 올려본다.
그림에도 조예가 깊으셔서
나도 모르는 화가와 작품을 설명해주실 때는
강의를 듣는 것 같다.
<김수영의 여편네>도 집필 중이시다.
언제나 따듯한 인간애로 사람을 좋아하시며
신여성으로 나의 롤 모델이신 김현경 여사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그 향기를 민들레 홀씨처럼
더 퍼트리시길 바란다.
주방 전시품
거실 전시품
서재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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