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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메는 날 낳고 "또 딸이네" 윗목에 밀어두고 또 울었다 -- 곡성 할매시인

한아름 (40대공주~~) 2019. 2. 26. 11:16

어메는 날 낳고 "또 딸이네" 윗목에 밀어두고 또 울었다

나원정 입력 2019.02.01. 00:06 수정 2019.02.01. 11:15

다큐멘터리 '시인 할매' 주인공들
뒤늦게 한글 깨친 80대 할머니들
시집 두 권 내고 영화까지 찍어
마을회관 사계절 고스란히 담아
"좀 더 예쁘게 입고 찍을 건디 .. "
이종은 감독 "아름답고 짠했다"
왼쪽부터 다큐멘터리 ‘시인 할매’를 만든 이종은 감독과 개봉 전 곡성에서 서울을 찾은 김막동·김점순·윤금순·박점례·양양금 할머니. 이들의 웃음은 봄꽃처럼 해사했다. 할머니들에게 한글과 시를 가르쳐준 김선자 길작은도서관 관장도 함께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메는 나를 낳고 “또 딸이네.”/윗목에 밀어 두고 울었다/나마저 너를 미워하면/세상이 너를 미워하겠지/질긴 숨 붙어 있는 핏덩이 같은/나를 안아 들고 또 울었다/하늘에서는 흰 눈송이가/하얀 이불솜처럼/지붕을 감싸던 날이었다’(안기임 ‘어쩌다 세상에 와서’)

‘밤새 눈이 와/발이 꽉 묶여 버려/오도 가도 못하겄네/어쩔까/이 눈이 쌀이라믄 좋겠네’(박점례 ‘겨울’)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 동네 담벼락, 시집에도 정겨운 그림이 가득하다. [사진 길작은도서관]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이젠 평균 나이 80대. 뒤늦게 한글을 깨친 전남 곡성 할머니들이 비뚤배뚤 적어낸 시(詩)다. 어릴 적 가난에, 오빠·남동생 그늘에 가려 학교 문턱도 못 밟았던 이들은 10년 전 마을 도서관에 한글 교실이 열리면서 까막눈의 오랜 설움을 한 자, 한 자 떨쳐냈다. 글을 깨치고 2년 만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시는 뜨거웠다. 시집살이, 농사일, 먼저 보낸 남편이나 자식 생각…. 모진 세월에 응어리진 삶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가슴에 꽂히는 할머니들의 시는 지역 문학상 수상에 이어 2016년 첫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북극곰), 이듬해 직접 그림까지 그린 시집 『눈이 사뿐사뿐 오네』(북극곰)가 나와 더 널리 알려졌다. 이 기교 없이 순수한 시들을 두고 시인 이영광(고려대 교수)은 “아주 빼어난 시집”이라 감탄했다. 오는 5일엔 할머니들의 이런 사연을 담은 다큐멘터리 ‘시인 할매’(감독 이종은)도 개봉한다. 마을 시인 대표로 개봉 전 서울을 찾은 김막동(84)·김점순(80)·박점례(72)·양양금(72)·윤금순(82) 할머니를 만났다. “시를 뭐인지도 모르고 썼는디 상도 받고 기쁘죠.” 막내 양양금 할머니의 볼이 발그레 물들었다. 박점례 할머니도 거들었다. “요렇게까지 영화가 나올 줄 알았으믄 신경을 더 쓰고 했을 텐디, 촬영한다니까 그냥 사진 찍는 줄만 알았죠.”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 동네 담벼락, 시집에도 정겨운 그림이 가득하다. [사진 길작은도서관]
연출을 맡은 이종은(47) 감독은 TV 다큐를 주로 찍다 극장판은 이번이 처음. 그는 “3년 전 첫 시집을 보고 글 모르던 어머님들이 쓴 진솔한 시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글을 몰라 풀이 팍 죽었다는 시구에 눈물이 핑 돌았다”면서 “그 속 탔던 마음이 60년 지난 지금에도 고스란히 짠해” 카메라를 들었다고 했다. 이듬해 1년 사계절을 꼬박 마을회관에서 먹고 자며 ‘시인 할매’들의 삶을 담아냈다. 마을의 한글 선생님 김선자(48) 길작은도서관 관장이 도왔다.

“아 참말로 공부 못헐 때는 막막했지. 우리 큰아들이 처음 학교 입학해갖고 숙제 내주면 엄마 보러 가르쳐주래. 나는 글을 모릉게 아빠 오면 가르쳐주라 했는디 대문앞에 왔다갔다, 안 오신다며 울어. 그랄 때 나는 어찌라고 애 터졌지. 인쟈는 내 이름자라도 쓰니 아들이 어머니가 훌륭하다 해싸요. 다 늙어갖고 ‘시 할매’란 말을 듣고, 참말로 추잡스랍지.” (김점순 할머니)

비가 오면 다 같이 부침개를 지져먹고, 꽃이 피면 소녀처럼 봉숭아 꽃물을 들이며 시를 벗하는 나날. 할머니들의 이런 속마음은 저마다의 시와 영화에도 담겼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사뿐사뿐 걸어오네’(김점순 ‘눈’)

‘소금에 국을 끓여도/그리도 맛나.’(조남순 ‘가난’)

힘겨웠던 시집살이, 가난의 기억을 해학적으로 돌이키는가 하면, 자식들은 독립시키고 남편은 여의고 홀로 된 외로움을 가만히 시로 곱씹기도 했다.

‘나무를 때면서/속상한 생각/3년을 때니까 없어지네/허청(헛간)이 텅 비어브네.’(김막동 ‘남편’)

‘죽었든 풀잎도 봄이 오면 다시 살아온디/당신은 왜 못 올까’(박점례 ‘서럽다’)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 동네 담벼락, 시집에도 정겨운 그림이 가득하다. [사진 길작은도서관]
“글을 배우자 돌아가신 부모님이 자꾸 생각났다”는 양양금 할머니의 시엔 포근했던 어릴 적 기억이 자주 서렸다. ‘아버지가 만든 스케이트 갖고/신나게 타다(중략)집에 들어간께 엄마가/“춘데 인자 오니/인자사 들어오니/어서 방으로 들어가그라/손발이 다 얼었다 내 새끼.” 한다’(양양금 ‘눈이 많이 왔다’)

“네 시에도 깨서 잠이 안 와부면 인쟈 시나 써야겄다 생각해요.”(윤금순 할머니) “말이 딱 떠오를 때가 있어요. 안 써놓먼 잊어붕게 요것은 몬 받침이 들어가더라, 잠 잘라다가도 어떻게 말을 맹글면 시가 되려나 하니까요.”(양양금 할머니)

김선자 관장에 따르면 이 두 할머니는 “하룻밤에도 여섯 편씩 시를 쓰는 모범생들”이다. 달력·전단지 뒤에 빼곡히 쓴 할머니들의 시가 일기처럼 하도 솔직해서 소동도 있었다. “부부싸움, 남편이 바람 난 얘기가 가감 없이 들어있다 보니, 자제분들이 손주들 혼삿길 막히게 이런 얘길 다 썼냐고 하시기도 했죠.” 김선자 관장이 귀띔했다. 할머니들의 시에 후렴구처럼 빠지지 않는 단골 문구는 바로 ‘아들·딸·손주 사랑한다’. 2017년 마을 시화전을 찾은 가족들의 눈시울이 왈칵왈칵 붉어졌던 이유다.

김선자 관장은 “도서관에서 책정리를 돕던 할머니들이 글을 모르신단 걸 알게 되면서 한글 교실을 열고 시를 가르치게 됐다”며 “학교에서 시를 어렵게 배운 이들은 오히려 시로 마음을 표현하길 두려워하지만, 할머니들은 시로 지나온 삶을 한 토막, 한 토막 끄집어 내신다”고 했다.

‘사박 사박/장독에도/지붕에도/대나무에도/걸어가는 내 머리 위도/잘살았다/ 잘 견뎠다/사박 사박’. 윤금순 할머니의 ‘눈’이다. 시집 발간 뒤 인터넷엔 “너무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는데 이 시를 읽으며 힘을 내기로 했다. 할머니 나이에 저도 잘 견뎠다 생각하고 싶다”는 댓글이 달렸다고 김선자 관장은 말했다. 그는 할머니들의 짧은 인형극을 곁들인 ‘시인 할매 북 콘서트’도 기획되고 있다고 전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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