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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양화가 말을 걸다 ⑧ - 십장생도(十長生圖),세한도(歲寒圖)

한아름 (40대공주~~) 2018. 12. 3. 11:39


    동양화가 말을 걸다

    당신께 드리고 싶은 새해 첫 선물

     

    작자 미상 십장생도

     

     

    ▲ 작자 미상 ‘십장생도 10곡병’ 19세기, 비단에 색, 151.0×370.7cm, 삼성리움미술관

     

    우와! 오셨군요. 드디어 오셨군요.

    1년 동안 당신을 기다렸는데 이제야 도착하셨군요. 밤길에 오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더디 오셔서 폭설 때문에 못 오시나 했어요.

    군불 지펴놨으니 어서 들어와 뜨뜻한 아랫목에서 몸 좀 녹이세요. 그동안 저는 아침상을 차릴게요.

    찬은 없지만 현미밥에 시래기국을 끓여놨으니 맛있게 드세요.

    동치미국물도 적당하게 익었고요. 된장에 박아 둔 깻잎도, 간장에 절여 둔 고추도 마침맞게 간이 배었어요.

     

    여행길에서 지친 당신의 입맛을 되돌려 줄 거예요.

    우선 식사부터 하신 후 커피 마시면서 밀린 얘기 함께 나누어요.

    아 참, 제가 당신을 위해 1년 동안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 마음에 드실지 모르지만 제가 식사를 준비할 동안 호박죽 드시면서 편안히 감상하고 계세요.

     

    당신을 향한 새해 첫 선물이랍니다.

     

     

    그림 속에 해, 달, 구름, 거북을 그린 이유

     

    ‘십장생도(十長生圖)’예요.

    세화(歲畵)를 대표하는 작품이고요. 새해를 축하하고 한 해 동안 액운 대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정초(正初)에 왕이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던 그림이에요.

    세화를 주는 풍속은 고려시대부터 세시풍속의 하나로 행해졌는데 벽사(?邪)와 진경(進慶)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대요. 나쁜 일은 막아주고 좋은 일만 생기게 해 달라는 뜻이지요.

    ‘십장생(十長生)’은 장수를 상징하는 열 가지의 사물을 뜻해요.

    해, 구름, 산, 바위, 물, 학, 사슴, 거북, 소나무, 영지가 대표적이지요. 구름 대신 달이, 바위 대신 대나무로 그려지는 등 문헌마다 장생물이 약간씩 다르게 표현되기도 해요. 조선 후기에는 복숭아나무와 대나무를 추가시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십장생에 선발된 사물은 해와 구름 같은 자연물에서부터 학과 거북, 소나무와 영지 등의 동식물까지 분포지역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어요. 한 장소에 그려 놓았지만 그림 속으로 초청받기 전까지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어요. 이렇게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그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상서롭다’는 것이었어요.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게 해 주는 존재들이니 누군들 반기지 않겠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서로가 서로에게 십장생 같은 존재가 된다면 굳이 이런 우의적(寓意的)인 사물을 빌리지 않더라도 만남 자체가 상서로워지겠지요.

     

    십장생도를 그림의 소재로 쓴 가장 큰 이유는 장수(長壽)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어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과 기원이 예술작품으로 표출되었어요. 이런 작품의 배경에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추구하던 도교(道敎)의 신선사상(神仙思想)이 큰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십장생이 있는 공간이 바로 신선들이 사는 ‘선경(仙境)’이자 불사(不死)의 ‘파라다이스(樂土)’이니까요.

     

    십장생도는 처음에는 궁중에서만 사용했어요. 왕, 세자의 결혼식이나 즉위식 혹은 책봉을 하는 가례(嘉禮)와, 회갑잔치 같은 수연(壽宴) 등 국가적 행사에서 왕과 왕비의 장수를 기원하고 행사장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용도로 제작되었어요. 궁중의 모든 그림을 도맡아 그린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들의 가장 큰 의무도 왕의 어진(御眞)을 제작하는 것과 함께 십장생 병풍을 그리는 것이었어요. 왕이 신하들에게 내려주는 세화로 널리 퍼지면서 민간에서도 축수용(祝壽用) 그림으로 애용된 거지요.

     

    당신은 왕보다 귀한 사람

     

    어때요? 너무 눈부신가요? 화려하다고요? 새해잖아요. 오늘만큼은 결핍이니 곤궁이니 하는 헐벗은 단어는 쓰지 않기로 해요. 고립이니 소외니 하는 외로운 단어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떠들썩한 축복을 받으며 날렵하게 한 해를 시작해도 조금 걷다 보면 어느새 생의 피로가 실타래처럼 뒤얽힌 길을 뚫고 가야 하잖아요. 그러니 지금은 그저 차분히 이 순간을 즐기고 누려야 할 때. 오늘만큼은 스스로를 따뜻하게 토닥거려 주고 격려해 주세요.

     

    원래 십장생을 포함한 길상도(吉祥圖)는 그림으로만 그려진 것이 아니었어요. 자수, 도자기, 나전칠기, 금속공예품 등 가능한 모든 매체에 길상도를 그렸어요. 오늘은 제가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만 준비했지만 세화로 그려지는 길상도는 이뿐만이 아니에요. 부귀·영화·다남(多男)·출세·재물·건강·장수 등등 인간의 소망을 담아줄 수 있는 소재라면 무엇이든 길상도로 환영받았어요.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백동자도(百童子圖), 모란도, 송학도(松鶴圖), 석류도, 군접도(群蝶圖), 약리도(躍鯉圖),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놀랍지 않나요. 눈이 닿고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길상도를 그렸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길상도가 넘치게 풍부하다는 사실은 그만큼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치기 쉽고 부서지기 쉬우면 매순간 힘을 얻고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이 필요했을까요.

     

    그런데 당신, 갑자기 왜 웃어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 누리기에는 너무 사치스러운 그림이라고 생각하는군요. 물론 잘 알아요. 그러나 이젠 시대가 달라졌어요.

    저한테 당신은 왕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에요.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재벌 총수만이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당신도 그들만큼 충분히 이런 사치를 누릴 권리가 있어요. 집이 좁다고 걱정할 필요없어요. 이 그림은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요. 컴퓨터 바탕 화면에 깔아 놓으면 충분해요. 문화와 권리는 소유하는 자의 몫이 아니라 누리고 향유하는 자의 몫이에요.

     

    새해 선물은 ‘무병장수’

     

    아침 준비 다 됐어요. 어서 식탁으로 오세요. 장수의 지름길은 아침밥을 챙겨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대요. 작년 이맘때 당신과 헤어져 돌아서는 순간부터 내내 생각했어요.

    당신한테 주는 세화에 올해는 어떤 내용을 담을까 하고요. 처용(處容)상이나 종규(鐘?)상이 좋을까. 닭이나 호랑이가 좋을까. 요지연도(瑤池宴圖)나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같은 축수적인 그림은 어떨까.

    그런데 얼마 전에 당신이 고혈압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당신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병장수(無病長壽)’가 아닐까 하고요. 오늘 아침상에 흰쌀밥과 고깃국 대신 현미밥에 시래기국을 올린 이유도 다 그런 배려에서였어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에요. 저는 1년 후 새해 첫날에 다시 올게요. 내년 이맘때 다시 만날 때까지 한 가지만 꼭 기억해 주세요. 제가 삼백예순다섯 날 동안 당신을 위해 아침마다 눈부신 태양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새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저는 오로지 당신의 삶이 풍부한 지혜와 행복으로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하루도 잊지 않고 동쪽 창문을 비출게요.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당신.

     

     

     

     

     

     

    쓸모없는 스승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

     

    김정희 세한도

     

     

    ▲ 김정희 ‘세한도’(부분) 1844년, 종이에 먹, 24.7×108.2cm, 국보 제80호, 개인 소장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있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겨우겨우 대학원을 졸업한 나는 공부를 포기할 결심을 하고 가진 책을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자기 책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공부를 포기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떠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계와 담쌓고 살며 2년을 놀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틈만 나면 책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무감에서 논문을 쓰고 공부할 때는 몰랐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책을 보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젠 진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2년이라는 공백도 컸지만 돌아온 탕자를 바라보듯 하는 주위의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는 더욱 힘들었다. 쟤 뭐야? 공부 그만두지 않았어? 모두들 그렇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때 한 선배가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받아주었다. 힘들어하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큰 목소리로 격려해 줬다. 아직 무명이었던 나의 글재주를 아껴 잡지사에 연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그때의 감사함을 어찌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알 수 있는 것

     

    1844년의 일이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제주도에 유배온 지 5년째 되는 해였다. 제자 이상적(李尙迪·1804~1865)이 중국 연경(燕京)에서 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120권을 보내왔다. 역관으로 공무를 수행하러 다녀오는 길에 스승의 부탁을 받고 책을 사왔다. 나라의 명을 받고 떠나는 길인 만큼 궁궐에서 사오라는 물건도 많았을 텐데 제자는 ‘힘 없는’ 스승의 부탁을 잊지 않았다. 1년 전에도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를 구해 제주도로 보내주었다. 모두 연경에서조차 구하기 힘든 책들이었다. 김정희는 감격했다. 당시 제주도로 유배당하는 것은 ‘정치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상적은 ‘끈 떨어진 갓’이나 다름없는 ‘쓸모없는’ 스승을 향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김정희는 제자의 마음이 더없이 고마웠다. 그래서 붓을 들어 완성한 작품이 ‘세한도’다.

     

    ‘세한도(歲寒圖)’는 제목과 그림, 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른쪽에는 ‘세한도’라는 제목을 적고, 중앙에는 그림을, 발문에는 가로 세로 줄을 쳐서 300개의 네모 칸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을 적었다.

    애초에 김정희가 의도한 그림은 여기까지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보는 ‘세한도’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우선 그림부터 살펴보자.

     

    그림은 소박한 초가집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각각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 단순한 구도다. 도입부는 예서체로 쓴 ‘세한도(歲寒圖)’와 행서체로 쓴 ‘우선(藕船)! 이것을 감상해보게(是賞) 완당(阮堂)’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다. 제목을 따라 가던 눈길이 ‘정희(正喜)’라는 붉은 도장에 잠깐 멈추려는 순간, 허공 중에 떠 있는 노송(老松)의 가지와 만나게 된다.

    가느다란 줄기를 보고 별 볼 일 없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근원을 찾아가보니 우람한 노송이다. 노송 곁에는 이제 막 물이 오른 푸릇푸릇한 청송(靑松)이 꿋꿋하게 서 있다. 노송이 김정희라면 청송은 이상적이다. 담백한 형태의 초가집을 사이에 두고 청송과 노송 건너편에는 역시 두 그루의 잣나무(柏)가 서 있다.(나무박사 강판권 교수는 잣나무를 측백나무라고 했다.) 잣나무가 있어 그림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잣나무를 그려 넣은 이유가 단순히 소나무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선택한 이유

     

    김정희가 ‘세한도’에 특별하게 소나무와 잣나무를 선택해서 그린 것은 이유가 있어서이다. 제자 이상적의 ‘의리’를 칭찬하기 위해 ‘공자(孔子)’ ‘자한(子罕)’ 27장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子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모든 나무들이 짙은 녹색인 한여름에는 알 수 없다. 어떤 나무가 싱싱하고 늦게 시드는지를. 추위가 닥쳐봐야 알 수 있다. 여전히 변치 않고 푸른 나무가 소나무와 잣나무인 것을.

     

    그게 어찌 나무만의 문제겠는가. 사람살이도 마찬가지다. 잘나갈 때는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본색이 드러난다. 이 그림은 권세와 이익을 좇아다니는 속물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올곧은 사람이 있음을 알고 반가워서 그린 작품이다. 그러니 그림 속의 소나무는 실제 소나무를 닮게 그린 것이 아니다. 이상한 각도로 왜곡되게 그린 집도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했던 제주도 대정리에 있는 실제 집이 아니다. 모두 김정희의 마음을 형상화한 사의화(寫意畵)다. 그러니 대정리에 가더라도 ‘세한도’ 속의 집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마시라.

     

    그림 속에서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쓸쓸한 구도는 선례가 없는 게 아니다. 원나라 때의 남종문인화가 예찬(倪瓚·1301~1374)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먹에 물기를 거의 쓰지 않고 숯처럼 진한 먹으로 그린 김정희의 ‘세한도’ 속에는 유배당한 자의 얼어붙은 추위가 짓이겨져 있다.

    예찬의 쓸쓸함이 결벽증에서 기인한다면 김정희의 쓸쓸함은 외로움과 분노에서 출발한다. 오른쪽 아래에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자(長毋相忘)’는 인장을 찍어 놓은 것만 봐도 제자를 향한 스승의 마음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적송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스승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눈물이 흘러내림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감격했다. 그는 스승에게 받은 사랑을 단순히 감격의 눈물로 끝내지 않았다. 10월에 동지사(冬至使) 일행을 수행하는 역관으로 연경에 갈 때 ‘세한도’를 가져갔다. 그곳에서 청나라 학자들에게 스승의 작품을 보여준 뒤 16명의 찬시를 받아 그림에 합장했다. 말하자면 스승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격려 메시지가 담긴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외로운 고도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스승에게 전송해 준 셈이다.

    그 후 김석준,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의 글이 붙어 현재의 두루마리 그림이 완성되었다. 평범한 그림 한 장이 사제 간의 정을 이어주는 차원을 넘어 한·중(韓中) 간의 문화 교류의 메신저가 되었다. 먼 훗날의 얘기지만, 근대 최고의 컬렉터였던 손재형(孫在馨)이 ‘세한도’의 소장가였던 일본인 후지츠카 지카시(藤塚?)에게 작품을 넘겨받은 사건에 이르게 되면 ‘세한도’는 한·중·일(韓中日) 세 나라의 ‘핫 이슈’로 부상하게 된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 국립중앙박물관에 ‘세한도’를 보러 갔다. ‘중국사행을 다녀온 화가들’이란 기획전에 전시되어 있다.(이 전시는 2012년 1월 15일까지 계속된다.)

    2006년 ‘추사 김정희’ 특별전 때 보고 5년 만이었다. 황량한 겨울 추위 때문이었을까. ‘세한도’를 보는 느낌은 각별했다. 5년 동안 내가 겪은 삶의 추위가 새삼 ‘세한도’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을 보면서 노송과 청송이 서로 의지하면서 견딘 167번의 겨울을 생각해봤다. 나의 소나무에 찬바람이 불 때 슬며시 다가와서 격려해 주었던 든든한 적송 같은 선배를 생각해 봤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소나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정육 미술사가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그림공부, 사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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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송 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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