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나라 옛다리를 찾아서 ~
남원(南原)
광한루(廣寒樓) 오작교(烏鵲橋)


광한루의 오작교(烏鵲橋)는
1582년 부사 장의국이
삼신산과 더불어 조성하였으며
현존(現存)하는 연지교 중에서
규모나 형식상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길이 58m 폭 2 8m의 규모로
정확한 본래의 모습인지는
뚜렷한 고증이나 문헌상 자료가 없기 때문에
확인은 불가능하나
구조상 홍예의 경간수를 볼 때
단연 국내에서는 규모가 크며
가장 긴 무지개 다리이다.

오작교(烏鵲橋)는
일반적인 평교(平橋)에 지나지 않지만
원형으로 된 홍교(虹橋)인데
다리 정원의 일부로 처리되어 광한루원에 있어서
하나의 첨경물이 되고 있으며 춘향전에 있어서의
춘향과 이도령의 로맨스가 있는
낭만적인 시설물로 알려지고 있다.


옛적 조상들은
다리가 양쪽을 연결해 주는 곳이자
구분을 짓는 곳으로도 생각하였다.
사찰에 있는 다리는
속계와 사찰을 구분하는 곳이요
성곽앞 다리는 성곽과 외곽을 구분하여
소수의 병력으로 적을 물리치는
중요한 곳으로 이용하였다.
누정앞 다리는
선비들이 다리를 지나면서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고 누각에 올라
그 동안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사전 준비 장소인
상징의 다리임에는 틀림없다.


오작교의 상판은
횡단곡선의 중앙부가 다소 높고
가장자리가 낮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형교 홍교의 구조 형식에
관련이 없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상판의 마감은 일반적으로
널마루 형식이나 한식 목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물마루 형식이 대부분이며
현재 오작교에는
부분적으로 원형의 청판석이 보이나
보수공사로 인하여 대부분
주변의 비석이나 자연석 등을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



오작교의 구성을 보면
홍예 경간수는 4개며
홍예틀의 부재수는 31개로
안지름 3 6m 홍예틀 구성
부재규격은 안넓이 0.31m
바깥넓이 0.42m 두께 0.53m 이고
홍예 이외의 측면석축은
자연석으로 쌓아 안을 채워 넣었다.


~ 광한루와 오작교에 관련 시(詩) 모음~
야등광한루(夜登廣寒樓)
烏鵲橋邊月 廣寒樓下塘 山開一面爽 牕納半天凉
오작교변월 광한루하당 산개일면상 창납반천량
夜色連空遠 川光入望長 徘徊耿無寐 風露濕衣裳.
야색연공원 천광입망장 배회경무매 풍로습의상
오작교 다리 가에는 달이요,
광한루 아래에는 연못일세.
산은 한쪽으로 시원하게 벌여 있고,
반공중의 시원한 기운 창으로 스며드네.
밤 경치는 저 멀리 하늘에 이어졌고,
냇물 빛도 저 멀리까지 바라보이는구나.
이리저리 거닐며 잠 이루지 못하여,
밤이슬에 옷 촉촉하게 젖었구나.
작자:~ 김 집(1574 ~1656)
자:~ 士剛(사강)
호:~愼獨齋(신독재)
시호:~ 文敬(문경)
조선 효종 때 학자
~시(詩) 풀이~
아마도 음력 7월 7일 칠석날 밤에
남원의 광한루에 올랐으리라.
‘견우와 직녀가 만나도록 만든 오작교 가에
上弦(상현) 달이 떠 있고 광한루 아래 연못에
그 오작교와 달이 비추어 있다’고 시상을 일으키고,
주변의 산과 시원한 기운이 창으로 스며든다고
이 좋은 밤 풍경과 낭만적 흥취로 하여
잠을 자지 않고
이슬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게
경치 감상에 빠진다고 맺었다.

~ 광한루와 오작교에 관련 시(詩) 모음~
광한루(廣寒樓)
織罷氷綃獨上樓
직파빙초독상루
水晶簾外桂花秋
수정렴외계화추
牛郞一去無消息
우랑일거무소식
烏鵲橋邊夜夜愁.
오작교변야야수.
작자:~ 계화(南原 妓生)
하얀 비단 짜고 나서 광한루에 오르니,
수정 발 바깥 계수나무 꽃이 핀 가을일세.
견우 낭군 가신 후 소식 없으니,
오작교 다리 가에서 밤마다 시름겹구나.
~시(詩) 풀이~
牽牛(견우)와 織女(직녀)는
음력 7월 7일 칠석날에 만나지만
지금은 이미 가을이라
애틋한 두 별이 만날 수 없구나.
기생으로서 情人(정인)을
기다리는 간절한 심정이 숨겨져 있다.

2 0 1 5. 2. 2 7. 하 얀 머 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