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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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에 자신을 낳고 20세에 돌아가신 정채봉 시인의 엄마를 기리는 슬픈 시다. 두 살 때 엄마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 자란 시인의 시집에는 사모곡들로 빼곡하다. '엄마' 라는 말보다 더 사무치는 것이 또 있을까.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그리움과 간절함으로 남아있는 어머니. 기쁠 때나 슬플 때, 화가 나고 억울한 그 모든 순간에 ‘엄마’ 라는 단어만큼 위안이 되는 단어가 어디 있을까
얼굴도 기억 못하고 말도 배우기 전에 가셨기에 ‘엄마’라는 말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정채봉 시인은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휴가 오시지 않은 엄마를 면회하러 9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곳에서는 엄마 젖가슴을 원 없이 만져보고 한 없이 눈물을 쏟아내었을까. 그리움도 윤회하는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화작가가 된 딸은 아버지의 작품과 부녀가 주고받은 편지 등을 모아 펴낸 추모집『엄마 품으로 돌아간 동심』에서 아버지와 똑 같이 "아버지가 단 하루 만이라도 휴가를 나온다면… 품에 안겨서 펑펑 울 것만 같다"고 적고 있다.
얼마나 억울하고 보고 싶었으면 '오세암'의 떠돌이 고아 길손이처럼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단 5분간이라도 주어진다면 엉엉 울겠다고 했을까. 시인이 운주사 와불 옆에서 쓴 시가 있다.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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