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태 ...
( 양명문 시 / 변훈 곡)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푸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우리 가곡 '명태'를 부른 성악가로 유명한 위대한 오현명!
그는 한국 가곡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우리가곡의 대부이며 한국 오페라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세월과 함께 더욱 완숙해진 음성과 녹슬지 않은 뜨거운 열정으로
한해 평균 40여 회의 무대공연을 소화해내는 성악가 오현명..
그는 한국최초의 오페라 '춘희'에 출연한 것을 비롯해
1953년에는 우리 가곡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가곡만으로
독창회를 열어 역사에 남았다.
명태의 어원..
일화에 의하면 명태는 조선조(인조때 쯤) 함경도 관찰사가 명천군(明川郡)에 초도순시를 했을 때 반찬으로 내놓은 생선이 담백하고 맛이 좋길래 이름을 물었더니 명천에 사는 태(太)씨 성의 어부가 처음으로 잡아온 고기라는 주민들의 말을 듣고 명천의 명자와 태씨 성을 따 명태(明太)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명태는 지방에 따라 명태를 잡는 방법에 따라 별명도 많은데 먼저 유자망으로 잡은 것은 그물태 또는 망태(網太)라고도 하고, 연승으로 잡은 것은 낚시태, 겨울에 나는 것은 동태(凍太), 3∼4월 봄에 잡히는 것은 춘태(春太), 산란을 한 명태가 살이 별로 없어 뼈만 남다시피 한 것은 꺾태, 명태의 어린 것은 노가리, 작은 치어를 앵치라고 부르고 있다.
이 밖에도 북어, 선태(鮮太), 왜태(특대), 애기태, 막물태 (맨나중 어기에 잡힌 작은 명태, 함남), 은어바지(초겨울에 도루묵떼를 쫓는 명태를 가리킴), 섣달바지(함남), 더덕북어(서울) 등 우리에게 낯익은 만큼 불려지는 이름도 여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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