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김은숙 작가가 처연하게 그려낸 문학적 풍경들
정덕현 입력 2018.08.11. 13:36
‘미스터 션샤인’의 독특한 정조는 문학적 코드에서 나온다
[엔터미디어=정덕현] 김은숙은 문학적 코드들을 작품 속에 담는 걸 즐기는 작가다.
<시크릿 가든>에서 길라임(하지원)에게 사랑을 느끼는 김주원(현빈)이 읽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대표적이다.
김주원은 독백을 통해 자신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며
자꾸만 끌리는 길라임에 대한 혼란스러운 마음을 이 문학적 코드를 활용해
드라마에 담아낸 바 있다.
또 그 작품에서는 길라임을 향한 김주원의 마음이 그의 서재를 채운 시집의 제목을 통해
다뤄지기도 했다. ‘너는 잘못 날아왔다(김성규),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황인숙),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황동규), 가슴 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홍영철),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진동규)’의 문구가 그것이다.
문학작품이 가진 그 특유의 진지함이 드라마의 상황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정조를 그려냈다.
이러한 문학적 코드의 인용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시집을 읽는 김신(공유)이 문득 “아저씨”를 외치며 달려오는 지은탁(김고은)을 보며
읊조리는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이 그것이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업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김은숙 작가가 꿈꾸는 문학적 상징들은 이번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분위기 있는
개화기 ‘하오체’와 엮어지면서 독특한 정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수나 놓으며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속에 조선의 사대부 여인들은
다 그리 살던데”라며 유진 초이(이병헌)가 애신(김태리)이 선택한
의병으로서의 삶을 안타까워하자 애신이 하는 답변이 그렇다.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요.”
또 유진 초이가 애신에게 자신이 노비임을 밝히는 장면 역시
문학적 코드들이 대사와 연출을 통해 들어가면서 아련한 느낌을 만들었다.
도요지를 찾아가던 길에서 처음 같은 배에 동승했던 그들이 한 겨울 꽁꽁 언 그 얼음 위를
함께 걸어가는 장면 자체가 그렇다.
그건 두 사람 사이의 신분의 벽이 가져올 관계의 위태로움을 살얼음판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 곳에서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으며 유진 초이가 던지는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라는 대사는
그 상징적인 장면과 어우러져 절절함이 더해졌다.
이 드라마에서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는 행위는
그들의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같은 대의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유진 초이가 편지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하는 마음은 그래서 그 시적인 ‘동행’의 의미가
더해져 독특한 시대적 정조를 그려낸다.
“나란히 걷는다는 것이 참 좋소. 나에겐 다시 없을 순간이라 지금이.”라는 애신의 말에
유진 초이는 편지에 ‘하마터면 잡을 뻔 했습니다. 걷자고, 저기 멀리까지만, 나란히.
조선에서 전 저기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저기로, 저기 어디 멀리로 자꾸만 가고 있습니다.’라고 적는다.
애신이 스스로 ‘불꽃’의 삶을 선택했다고 말했을 때도 유진 초이는 편지에 적는다.
‘참 못됐습니다. 저는 저 여인의 뜨거움과 잔인함 사이 어디쯤 있는 걸까요.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가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꽃 속으로. 한 걸음 더. 요새 전 아주 크게 망한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면 어색할 수 있을 이런 다소 문학적인 대사들이
개화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마주하며 그 시대가 겪은 처연한 정조까지를 담아낸다.
김은숙 작가의 세계가 훨씬 깊은 감정적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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