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둴 중순, 새벽 5시가 좀 지난 시간, 눈꼽째기 창을 통한 설경)
사월의 중턱에서, 며칠 전 다녀온 화채봉의 눈밭이 내 마음에 와 젖는다. 남쪽은 이미 꽃 피고 새 울건만 변화 무쌍, 예측불허의 산간지대 날씨는 계절을 망각한 듯 밤사이 예외의 정경을 펼친다. 눈곱째기 창에 비친 어둑 새벽의 설경, 사걀의 동심에 뿌린 눈 내리는 마을이듯 장독 위 엷게 쌓인 순백의 결정체는 엄동설한 아슴푸레 만져지는 어머니의 곱은 손등이다.계절과 세월이 내려앉아 빗어진 이곳 원시적 두메산골, 한 집 두 집 낯익은 그림조차 눈 속에선 생경하듯, 간밤에 내린 눈은 골짜기의 소박한 삶의 정취를 변환한다. 교교히 흐르는 대기 의 기류, 눈밭에 잘 육화된 고독한 기운의 일체감은 어느 은둔자의 내밀한 공간에 그 은밀함을 더하듯한 적막 에도 그래도, 봄은 오고 있었다. 비록 겨울 끝자락에 지배당한 산릉이지만 순환의 계절 따라 전해오는 연둣빛 태동의 강인한 생명력과 천변만화의 신비함은 분명 우주를 운행하는 신의 은총이리라. 만물 만사의 흥망성쇠, 부귀 빈천이 물레바퀴 돌듯하는 인간사, 찰나의 시간조차 훑어야 하는 숨 가쁜 인생들 의 투쟁 따윈 무관한 이곳에도 인간의 나약한 한계란 근본적 조건이 시간이 더할수록 선명함에 두 손 앞에 모 으는 습관적 의식은 어디에 머무르든 붐히 연결되는 몽환적 분위기에 눈멀고 솔밭
가지에 머무는 들썩인다.알싸해 는 생의 애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 존재임을 재인식한다. 무심결에 여읜듯한 세월, 지금도 숨 쉴듯한 내 젊음의 뒤안길, 잃어버린 시간의 아쉬움인 양 한 조각 기억의 끝자락에 탈색된 쪽빛 꿈의 유희가 간신히 대롱인다. 부모님 보살핌에 중독된 어린 시절은 가슴에 선연한데 먹물처럼 푸르던 날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날의 아름다운 실체는 다 어디로 스며든 것일까. 불로불사의 허공에 적체된 시간의 아련함이 파르르 손끝에서 떨리는데. 차라리 눈을 감는다. 들판에 머무는 적막처럼 어 렴풋이 무언의 형상이 망각의 공간에서 전율 된다. 무의식의 깊은 우물 속, 내 젊음에 침잠하는 황량한 언덕 외딴집이 의식의 두레박질로 요동친다. 어느 초여름날, 고딕 양식의 웅대함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작지 않은 돌로 건축된 쓸쓸한 집에 멈춘 나의 발 걸음, 야트막한 언덕에 손수 지은 돌집은 내게 묘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깊은 생각 속에 시름 하던 나는 초대 된 그 집 정취가 전생이 아닌 바로 어느 고전, 영원불멸할 한 권의 작품에 기인함을 깨우친다. '아, 바로 그것 인데,' 나는 묘한 시선으로 정갈한 실내를 살피고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두꺼운 통유리 창 앞에 장승 처럼 멈춘다.비록 황량함과 바람에 흐느끼는 히드풀의 요동은 없었지만 비탈진 들판, 다랑이 논밭은 마치 여 기저기 흩어진 유년의 동화 속 미로처럼 간간이 자라는 관목과 바람부는 대로 흐르는 이름 모를 잡초의 서걱 거림이 계절에 없는 쓸쓸함을 몰고 오듯, 그 외딴집은 도심에서 거침없이 훈련된 생활인의 정서에 영락없는 어느 고전 명작의 현주소로 다가왔다. 선한 인성이 환경에 변질하여 세상에 태어남을 저주하듯 애증의 도가 니에서 허우적대는 주인공의 무섭고도 애절한 집착이 엉겨드는 시대적 삶이 머무는 듯. 아주 어린 시절 사춘 기의 필독서인 한 권의 소설에 녹아내린 감성은 미성숙한 정신세계에 열병을 앓게 한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그 외딴집에서 다시 만난다. 사랑과 증오란 지독한 애증을 둘러싼 3대에 걸친 복수극의 서막과 종막의 그림자가 휘몰아치는 황무지 모래 바람에 매몰되었듯 그 외딴집 기억에서 작품 속 주인공과 너무나 비교되는 주인장의 수수하고도 질박한 모 습이 회상된다. 오랜 시간 뵙지 못한 그 집 주인의 맑고 소박한 실루엣이 불식 간 한 줌의 그리움으로 일렁임 에 스치는 바람결에 안부를 전한다. 엷은 허스키에 서린 따듯한 음성과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심없는 소 박한 웃음이 시선에 감돈다. 강산이 여러 차례 오간만큼 나도 변했다. 세월 앞엔 누구나 평등할 수 밖에 없는 만고의 진리임에도 만유에 스며드는 불변의 현상에 선뜻 찾아뵙지 못하는 자신이 참으로 못났다는 생각으로 담채화의 진경이 담긴 눈밭을 하염없이 바라봄에, 아직도 조는듯한 옆집 잔디밭 은백색 빛 슬픈 실루엣이 외 등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균제감을 잃지 않은 자연의 미학은 이 시간 미력한 인간에게 경건함을 일깨운다. 겨울 내내 비었던 쓸쓸한 산골에 이제 순색의 생명력을 일으키는 봄의 서막처럼, 내게도 상주하는 집과 영월 을 거침없이 뻗은 도로 위를 질주하는 서막이 될 것이다.태산을 움켜 쥔듯 미동없던 감성에도 자연의 현상은 늙은 이를 더없는 상념에 서성이게 한다. 회상의 시간을 통해 신의 예술적 창작에 여념이 없으실 선생님께 이제 곧
드러낼 일출에 그분의 무탈
Saint Preux - Rivages Infin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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