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그림 중 쉽고 재밌는 그림들
무제 1957년 잡힐 듯 말듯, 놀듯 말듯. 새가 사람을 홀린다?
무제 1959년 사람 넋을 빼았는 빛깔을 뺐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화병과 접시 1956년. 선을 그어 만든 꽂은 꽃이지만 살아있는 모습이다
바랑 1951~1953년. 광주리를 이고 바삐 걷는 여인의 치마가 날렵하다 (바랑-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주머니)
무제 1965년 구름은 구름이요! 산은 산이고, 나무는 나무로다!
무제 1955년 을미년 1월 3일( 乙未新年 初三日 ) * 苑西洞(종로구 원서동) 깊은 골목에 서울의 舊態(ㅣ日은 舊의 약자, 구태)가 歷然(역연)한디 (겨울에 썰매를 타거나 눈 위에 누워 눈그림자를 만드는 등 풍경들이 옛날과 똑같다) * 灰色(회색) 하늘에 까마귄지 뭔지 새가 떠돌고 * 三角山(삼각산)에 집한채 * 乙未新年 初三日 (을미년 1월 3일) * 앙상한 가지에 달빛이 푸르고 * 밍숭한 雪山(설산)에 月色(월색, 달빛)만 고요하고
깨어진 불두 1952년 ( 책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에 실린 불상 )
불두 ( 책 '그림에 부치는 詩'에 실린 불상 )
무제 1935~5년 그냥 정물화같다
산월 1952년 씨에서 막 자란 / 갓 피어난 소나무
밀집모자 사나이
닿을락 말락, 잡힐락 말락, 앉을락 말락, 나를락 말락, 가까울락 말락
소 지붕 위 닭 쳐다보듯, 무심한 것들의 모임
당신의 얼굴
* xx주변 冷水욕(냉수욕) * 웃통 벗고 일할 때 * 아~ 빠리(Paris)는 어듸멘고! * 당신의 얼굴
자화상 1957년 ⓒ환기재단
여름 달밤 기좌도(안좌도) 1961년 ⓒ환기재단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보낸 편지와 일기에서 추상화가 김환기의 마음을 읽으면서 남긴 그림을 함께 봅시다. ( 김환기 수필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 따옴 )
편지와 일기
1963년
커피는 10선(仙;cent) dollar = 弗, cent = 仙 ( 처음보는 센트의 한자 )
10월 29일 어제 저녁을 하고 뉴욕 대학교에서 하늘을 보니 만월(滿月, 보름달)이 아닌가. 나는 동양인이어서 그럴까. 달을 보면 맘이 이상해져... 305쪽
달 둘 1961년 ⓒ환기재단
가족에게 보낸 그림엽서 1963년 ⓒ환기재단
무제 1963년 ⓒ환기재단
12월 12일 오후 3시 30분 오늘은 어두워서 일이 안 돼요. 눈 뒤에 비가 오나봐.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 조국이라는 게, 고향이라는게. 내 예술과 우리 서울과는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애... 내 그림 좋아요. 이제까지의 것은 하나도 안 좋아. 이제부터의 그림이 좋아. 저 정리된 단순한 구조, 저 미묘한 푸른 빛깔, 이것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세계이며 일일 거야... 어두워졌어요. 309쪽
1965년
1월 19일 미술은 질서와 균형이다. 312쪽
무제 1964년 ⓒ환기재단
1월 24일 선과 점을 좀더 밀고 가보자 312쪽
2월 1일 대폭 (87"x67") 처음 시작. 대작이다. 달과 산과 바람과..... 흑선黑線 그림은 완성으로 손 떼다 313쪽
봄의 소리 12-65 1965년 ⓒ환기재단
무제 1967년 ⓒ환기재단
무제 1967년 ⓒ환기재단
1968년 1월2일 선인가? 점인가?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 315쪽
1월23일 나는(飛)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것들을 계속 해 보자. 315쪽
1월 28일 빨간 바탕에 노란 삼각형점(點). 이제까지는 내 빛깔이 아니다. 밝은 빛을 좀더 내봐야겠다. 316쪽
오브제(제기/祭器) 1968년 ⓒ환기재단
무제 25-07-69 1969년 ⓒ환기재단
별 1969년 ⓒ환기재단
1970년
1월8일 내 작품은 공간의 세계란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어쩌면 내 맘속을 잘 말해주는 것일까. 그렇다. 내 점의 세계... 나는 새로운 창 을 하나 열어 주었는데 거기 새로운 세계는 안 보이는가 보다. 오호라... 322쪽
1월27일 나는 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에 더 갔을까. 내가 작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 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 323쪽
영원한 것들의 스케치 1955년 ⓒ환기재단
2월11일 한국일보사로부터 내신. 한국미술대상 전람회 제1회에 출품 의뢰. 출품하기로 맘 먹다. 이산(怡山:김광섭)시 <저녁>을 늘 맘속으로 노래하다. 시화詩畵 대작을 만들어 '한국전'에 보낼까 생각한다. 324쪽
수상작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서 ) 1970년
ⓒ환기재단
6월 23일 잊고 지내던 강신석씨가 주간한국에 내 기사를 뜯어 편지 속에 보내오다. 마산에서. 편지의 구절에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앞바다 돗섬에 보리가 누렇다 한다. 생각나는 것이 많다. 부산에서 향(鄕)(부인 김향안을 이름)과 똑딱선을 타고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가던 때.... 맨해튼... 지하철을 타고 뻐꾸기 노래를 생각해 본다. 326쪽
무제 27-11-70 1970년 ⓒ환기재단
무제 1970년 ⓒ환기재단
무제 05-04-71 1971년 ⓒ환기재단
무제 3-07-72 1972년 ⓒ환기재단
1973년
10월8일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351쪽
무제 16-10-73 1973년 ⓒ환기재단
1974년
2월 7일 Henry David Thoreau(1817-1862) ※미국의 작가, 자연주의자, 환경보호론자, 철학자 'Low living and high thinking' 덕불고필유린 德不孤 必有隣 ※德不孤 必有隣 출처 논어,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 무제 20-5-74 1974년 ⓒ환기재단 ※ 돌아가시기 두달 전에 그린 그림으로 장중, 엄숙, 경건한 느낌
7월 7일 더운 날이다. 오늘 입원하게 돼서 3:30 PM 향(鄕), 유진 母동반으로 입원
7월8일 7시경에 일어나다. 아침 커피가 참 좋다. 오후7시경 향鄕 오다 도덕경, 천자문, 여류미술전 목록 등 가지고, Y가 붉은 장미 한 다발 안고 오다. 향을 태우고 드라이브 해 온거다 8시 떠나다. 374쪽
7월11일 鄕, 담배와 성냥 가져 오다. 다시 7시에 유진 모(母)와 오다. 여사가 아주 예쁜 Key Walnut을 선물주다. 정이 드는 지갑이다. 내일 한시에 수술, 눈치 보니 어려운 수술인 것 같다. 지금 나는 아무런 겁도 안 난다. 평온한 마음이다. Walnut 곽에 장난하다.
"구구삼정(鳩鳩森亭)에 나오면 하늘도 보고 물 소리도 듣고 프랑스 붉은 술에 대서양 농어(弄魚)에 인생을 쉬어 가는데 어찌타 사랑이 병이 되어 노래는 못 부르고 목 쉰 소리 끝일 줄을 모르는가." 1974.7.11 유니아티드 병원 망해실(望海室) 수화 청취(樹話 晴醉).... ※ 鳩(비들기 구)鳩森(나무 빽빽할 삼)亭(정자 정)
7월12일 해가 환히 뜬다. 오늘 한 시에 수술. 내 침대엔 'NOTHING BY MOUTH'가 붙여있다. 내일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7월 25일 점으로 표현한 별빛을 만나러 하늘나라로 가시다.
수화 김환기의 묘 미국 뉴욕주 켄사코 묘지
김환기가 사랑하는 것들
호적 이외의 이름 수화 樹話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하튼 호적의 이름이 싫어서 내 이름을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글자를 모아 놓고 거기서 나무 樹(수)를 얻었으나 그 밑에 붙일 글자를 좀처럼 얻지 못했다. 말씀 話(화)를 생각해 낸 것은 한참 후인 것 같다. 樹話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내딴에는 정통으로 들어맞는다고 생각돼서 그땐 혼자서 약간 기뻐했다. ... 푸른 산 푸른 숲을 누가 좋아하지 않으랴. 무심코 지나가도 우거진 나무 그늘을 지날 때면 쉬어 가고 싶어진다. 비록 초라한 집일망정 樹에 파뭍혀 살고 싶어진다. 내가 지금도 이 산골에 살고 있는 것은 막연히 그러한 점에서일 게다. ... - 신천지 1954년 5월
토실토실한 잣
김환기가 사랑하는 것들 서울 ·파리 1945~1962
김환기가 실험적인 초기 작업에서 나아가 일관된 예술관을 탐구하게 된 것은 1948년에 그가 주동이 되어 결성한 <신사실파>에 참여하면서 부터이며, 추상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그 바탕이 되는 모든 형태는 '사실'이라는 의미를 함축시키기 위해 <신사실파>라는 이름을 김환기가 주장하였다. 이들은 자연형태를 거부하지 않은 채 새로운 시각으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김환기가 외래로 부터 유입된 미술 양식과 나를 낳아준 문화가 서로 부딪치며 발전하여, 민속적 기물들과 자연 풍경을 단순한 윤곽선과 평탄한 색면으로 묘사한 독특한 양식이 태어났다.
사람들은 6·25 전쟁과 같이 참혹한 경험을 겪으면 현실을 고발하거나 비판하는 노력과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김환기도 『피난열차』(1951)나 『판자집』(1951)『피난선』등과 같이 피난지의 풍경과 어려운 생활상 등을 소재로 하여 현실을 고발하는 기록을 남겼으며, 한편으론 산,달,도자기,반라의 여인 등 비현실적인 소재로 한 그림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잊게하는 일종의 도피처라 한다. 『항아리와 여인』(1951)『달과 항아리』(1952)와 같은 그림들을 예로 들 수 있다.
'항아리와 여인들' 1951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농협창고
1956년 프랑스 파리로 떠나다.
파리로 간 동기 과거나 오늘이나 우리 예술가들의 최대의 불행은 바람을 쐬지 못한 것,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오. 우리들은 넓은 세계에 살면서도 완전히 지방인이외다. 한국의 화가일지는 몰라도 세계의 화가는 아니외다.
나는 동양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변모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 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철두철미한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 밖에 없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 또 생각했다. - 생각 조각들/片片想에서 1961 에세이211쪽
파리 통신 II ... 내 예술은 하나 변하지가 않았소.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만 될 것 같소.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 정신(詩 精神)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밝은 태양을 파리에 와서 알아진 셈 - 1957.1 에세이 142쪽
파리 통신 III ... 난 여기 온 다음날부터 내 붓은 들고 있으나 도무지 돼야지요. 여전히 항아리와 새를 그리고 있는데 파리에 와서도 변하지 않고 있소. 나는 좀 비약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이 안 되는구려. - 1956.10 에세이 146쪽
'항아리와 여인' 1956년 안좌면 읍동리 앞너리 화장실
이조 항아리
지평선 위에 항아리가 둥그렇게 앉아 있다. 굽이 좁다 못해 둥실 떠 있다.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와 틀림없는 한 쌍이다.
똑 닭이 알을 낳듯이 사람의 손에서 쏙 빠진 항아리다. 新天地 4의1. 1946.2 에세이 26쪽
백자 항아리와 한국 근현대미술 국립박물관
'매화꽃이 있는 정원' 1957년 안좌면 여흘리
청백자 항아리
내 뜰에는 한 아름되는 백자(白磁) 항아리가 놓여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꽃나무를 배경을 삼을 수도 있고 하늘을 배경으로 삼은 때도 있다. 몸이 둥근데다 굽이 아가리보다 좁기 때문에 놓여있는 것 같지가 않고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희고 맑은 살에 구름이 떠가도 그늘이 지고 시시각각 태양의 농도에 따라 청백자(靑白磁) 항아리는 미묘한 변화를 창조한다. 칠야삼경(漆夜三更)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月光)으로 인해 온통 내 뜰에 달이 꽉 차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항아리는 더욱 싱싱해지고 이슬에 젖은 청백자 살결에는 그대로 무지개가 서린다.
어찌하면 사람이 이러한 백자 항아리를 만들었을꼬.... 한 아름되는 백자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砂器)로되 다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 1955년 5월 김환기 에세이 117쪽
조선 백자 대나무 매화 무늬 항아리
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여기 젊은 화가로 유명한 뷔페는 데생 화가다. 나는 그의 유화보다 데생을 더 좋아한다. 이 화가는 지금 굉장한 성 안에서 살지만 술병 하나만 놓고 그리는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평범한 포도주병이 그림이 됐을 때그 병은 아름답기만 하더라. 아버지도 파리에 와서 항아리와 제기(祭器)만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 1959.12.16 김환기 에세이 155쪽
벽화(?) 팔금면 읍리
편편상(片片想) - 쫌쫌한 생각들 1 미술평론가 꼰랑 옹은 내 그림을 자기(磁器)같은 살결이라 했고, 내 아뜨리에의 학생 윤군은 내 선을 도자기의 선이라고 했다. 본바닥 전문가의 평은 그저 그랬지만 윤군의 깜찍한 감각에는 찔끔했다.
나는 단원(檀園)이나 혜원(蕙園)에게서 배운 것이 없다. 난는 조형과 미와 민족을 우리 도자기에서 배웠다. 지금도 내 교과서는 바로 우리 도자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그리는 그것이 여인이든 산이든 달이든 새든간에 그것들은 모두가 도자기에서 오는 것들이요, 빛깔 또한 그러하다.
저 푸른 그릇을 보라. 저 흰 그릇을 보라. 저 둥근 항아리를 보라. 날씬하게 서 있는 저 제기의 굽을 보라. 저 술병의 모가지를 보고, 깍아 내린 그 칼 맛을 보라. 찌들고 썩은 이 찻종의 호흡과 체온을 못 보는가?
조선백자 장생무늬 병
조선 분청사기 연꽃 물고기 무늬 병
'생선' 1957년 경기도 송탄 한일아파트 1번 국도
4 미술가는 눈으로 산다. 우리들은 눈을 가졌으되, 만물을 정확히 보고 있는 것일까? 옥석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또 틈에서 옥을 발견해 낸다는 것은 하나의 창조의 일이다. 모딜리아니나 피카소가 아프리카 조각을 발견했고, 저 농가의 부엌에 쌓여있던 우리 뚝배기를 찻그릇(茶椀)으로 발견해낸 일본인들의 감각은 틀림없이 모두가 창조의 일이다. 로댕이 "자연을 보라, 거듭거듭 자연을 잘 보라"고 되풀이했던 그 말은 자연 속에서 구체적이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견해 내라는 말이 아닐까? ....
7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 한국 미술가로서 무엇이든 10분을 이야기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의 하늘은 지독히 푸릅니다. 하늘뿐이 아니라, 동해바다 또한 푸르고 맑아서, 흰 수건을 적시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그런 바다입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결을 좋아합니다. 깨끗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부르도록 흰 빛을 사랑하고 흰 옷을 많이 입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사는 우리들은 푸른 자기, 청자를 만들었고, 간결을 사랑하고, 흰옷을 입는 우리들은 흰 자기, 저 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1961.9 김환기 에세이 211쪽
물고기 용 모양 주전자
무제I 1 내 선전이 아니고 나는 부산에 오기 전까지 몇 개의 항아리와 수년 같이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물론 조선백자 항아리입니다. 10년을 두고 보도 싫증이 나지 않고 더욱더 반해 가기만 했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반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대상의 매력을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항아리의 매력은 역시 한마디로 말해서 아름다워서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항아리의 아름다움, 항아리들의 미는 왜 아름다운 것인가,어디가 어때서 아름다운 것인가, 또 이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 건가... 이것을 밝혀야겟는데 적어도 이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미의 특질문제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해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이씨 조선의 역사적 고찰 내지는 그 시대의 생활환경 등을 떠나서 그 물건만을 보는 직관을 통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2 아까 평범한 형태, 평범한 빛깔이라고 했습니다. 이 '평범'이라는 것이 조선자기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선 항아리는 철두철미 평범입니다. 평범한 우리 생활기(生活器)입니다. 술항아리, 김치항아리, 젓항아리, 약항아리, 곡식 또는 무엇 무엇 항아리, 어쨌든 우리들의 생활에 따르는 평범한 항아리들입니다. 만일 조선자기에 조선항아리에 있어 이 '평범'이 없다면 오늘과 같이 조선자기는 미의 왕좌에 앉지 못했을 것입니다. 평범이란 말과 감각은 자연스럽다는 말과도 통할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한 것, 자연한 물건, 조선항아리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닭이 알을 낳듯이 자연에서 출산한 것입니다.
조선백자 태아를 보관한 태항아리
거기엔 아무런 기교와 재조(才操)와 계획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한 형태, 자연한 빛깔은 도공의 무심(無心)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녹로와 더불어 자연과 합치되었던 것입니다. 무심의 경지에 가지 않고는 자연과 합치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위대한 미술품을 만들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릇을 만들고 항아리를 만들면 그만 이었습니다. 백토(白土)와 녹로는 그들의 생리의 일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평범하고 가장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조선백자
3 ... ... 우리의 용기(用器)는 거의가 부엌살림에 따르는 실용기입니다. 애완, 음미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실생활에 쓰는 일종의 소모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어찌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자기들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미의식(美意識)이란 천의무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그만 지식과 개성은 외려 망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운치나 풍류성을 노렸던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연에 맡겼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고나 할까요.
조선백자 풍경 항아리
그래서 이루어진 자기는 진실로 소박하고 단순하고 건전하고 원만하고 우아하고 따뜻하고 동적인가 하면 정적이고 깊고 또한 어딘지 서러운 정이 도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아름다운 자기가 되었습니다. 조선의 우리 자기의 대표는 역시 백자항아리가 아닌가 합니다. 가장 단순한 빛깔이란 백색이었는데 우리 조선자기에 나타난 이 단순한 백색은 모든 복잡을 함축해 그렇게 미묘할 수가 없습니다. 말과 글자로 표현한다면 회백(灰白), 청백(靑白), 순백(純白), 난백(卵白), 유백(乳白) 등으로 말할 수 있는데 이것 가지고는 도저히 들어맞지가 않습니다. 목화(木花)처럼 다사로운 백자, 두부살같이 보드라운 백자, 하늘처럼 싸늘한 백자, 쑥떡같은 구수한 백자, 여하튼 흰 빛깔에 대한 민감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특질인 동시에 또한 전통이 아닌가 합니다.(미완) - 김환기 에세이 233쪽
조선백자 학 무늬 항아리
파리통신 IV
내 고향, 산상(山上)에 오르면 바닷바람에 씻긴 무수한 바위들을 볼 수 있다. 그 피부의 아름다움이란 내 소년시절 감정에 못 박힌 것인데, 그러한 것을 나는 지금 루오에서 본다. ............ - 1959년 1월 김환기 에세이 150쪽
10년 6월 한때 서울 하늘
하늘 ... 새와 달과 산을 십수년 그려 왔으나 아직도 이런 것을 더 그리고 싶다. 브라크도 새를 많이 그리고 루오와 미로도 달을 많이 그리지만 내 새와 내 달과는 아주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달보고 바보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달보다는 태양을 사랑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달은 동양의 것일까. 불원해서 달도 정복될 모양이니 달의 신비가 깨뜨려지는 날에는 나도 태양이나 별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 1960년 1월 김환기 에세이 173쪽
달과 새 안좌면 읍동리
고려청자 매화 대나무 학 무늬 매병
산(山)
늘 산을 생각하면서도 산에 못 간다. 요행히 학교가 산비탈에 있어 산에서 사는 것 같고 화실 창 밖으로 북한연봉(北漢連峰)이 내다보이니 생활이 흡사 화의간산격(畵意看山格)이다. 창 밖, 그 중에도 꾀꼬리는 지금도 가까이 와서 울고 있으니 자연의 혜택도 이만하면 넘칠 정도다. - 1960년 7월 김환기 에세이 175쪽
벽화(?) 팔금면 읍리
고향의 봄
내 고향은 전남 기좌도(箕佐島) ( 현재 안좌도). 고향 우리집 문간에서 나서면 바다 건너 동족으로 목포 유달산이 보인다. 목포항에서 백마력 똑딱선을 타고 호수같은 바다를 건너서 두 시간이면 닿는 섬이다. 그저 꿈 같은 섬이요, 꿈 속같은 내 고향이다.
겨울이면 소리없이 함박눈이 쌓이고 여름이면 한번씩 계절풍이 지나는 그런 섬인데, 장광(長廣)이 비슷해서 끝에서 끝까지 하룻길이다. 친구들이 "자네 고향섬이 얼만큼 크냐"고 물으면 "우리 섬에선 축구놀음은 못한다."고 대답한다. 공을 차면 바다로 떨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섬에는 수천 석씩 나는 평야도 굽이굽이 갈려 있고, 첩첩 산도 겹겹이 둘려있어 열두 골 합쳐 쏟아지는 폭포도 있다.
순하디 순한 마을 안산(案山)에는 아름다리 청송이 숨막히도록 총총히 들어차 옛날엔 산삼도 났다지만 지금은 더덕이요 복령(茯岺), 가을이면 송이버섯이 무더기로 난다. 낙락장송이 울창하게 들어찬 산을 바라보며, 또 그 산 속에서 자란 나에게는 고향 생각이란 곧 안산 생각뿐.... 이 봄에도 섬아가씨들은 양지바른 산기슭을 찾아 검밤불이랑 냉이랑 캐?지...
뒤에 보이는 산이 순하디 순한 마을 안산(案山)
'뱃놀이' 1951년 경기도 송탄 한일아파트 1번 국도
화문 2제 ( 畵文 二題 ) 1. 불상의 파편
내 문갑(文匣) 위에는 아기주먹만한 불상(佛像) 얼굴이 놓여있다. 아깝게도 목이 덜어졌고 양 귀가 떨어졌고, 그것은 할 수 없다 치더라도 눈 위 눈썹에서 이마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두리둥실한 돌덩어리와 같은 그러한 불상의 얼굴이다. 이 처참하게 된 불상이 어찌하여 이렇게도 아름다울까. 3년을 한자리에 두고 늘 바라보고 있으나 처참한 이 반조각의 얼굴에 떠돌고 있는 불가사의한 미소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지금도 신라 천년의 웃음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는 이 얼굴에 대해서 '평화의 미'를 써야할 책임을 느끼고 있지만 이 예술의 조그만 파편이 이토록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 ? 김환기 에세이 239쪽
조선가구 문갑 文匣
부처의 발 국립박물관 /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
둥근 달과 항아리 ... 항아리만을 그리다가 달로 옮겨진 것은 그 형태가 항아리처럼 둥근 달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또한 그 내용이 은은한 것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프랑스 사람들 말에 '달같은 바보'라는 말이 있다. 태양처럼 찬란한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은 항상 뜨거운 것을 잃지 않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 1963년 1월 김환기 에세이 242쪽
'항아리와 매화' 1954년 경기도 송탄 한일아파트 1번국도 변
예술소론
우리들은 문화민족을 자처한다. 그런 민족일지는 모른다. 신라의 문화와 고려의 청자를 자랑하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찬양하고 이 충무공을 내세운다. ... 석굴암의 석조에서 우리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예술을 느끼고 단원의 무학도(舞鶴圖)에서 우리 민족의 예술적 특성을 본다. 현재(玄齋), 겸재(謙齋), 혜원(蕙園)에서 사실의 실감을 느낄 수 있고, 우리는 함축과 여운을 우리 예술에서 볼 수 있다. ... 우리 문명인을 진심으로 매혹할 수 있는 예술이란 대상의 작품 그 속에서 무엇인가 높은 예지를 인식하고 또한 그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닐까. .... - 1954년 7월 김환기 에세이 92쪽
느낌 김환기는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하늘, 산, 바다 등 무심(無心)한 자연물, 우리의 조상들이 수천년동안 한반도에 살면서 경험한 것들의 결정체 도자기, 새와 나무와 함께, 생명체로서 태어나 자란 곳의 느낌을 미술이라는 예술로 나타낸 것 같다. 그저 주위에 뿌려져 있는 평범한 것들에 대한 사랑, 그것은 곧 일상 삶에 대한 사랑으로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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